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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OPICS

Structure

두개의 서장과 11개의 삽화로 이루어지는 [망각의 바다]의 표류담

모리무라 야스마사예술감독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14

[미술관 앞의 서장] 기념스럽지 않은 기념물

요코하마 미술관 실외

트럭이지만, 고딕 양식의 교회 같고. 누구나 좋아하는 말인 <LOVE>이지만, 어딘가 의지할데 없이 일그러져 있다.
델보예도 김홍석도, 거대한 기념물이면서도, 기념물의 알맹이를 없애려 한다. 공간과 사람의 마음을 박력으로 지배하려는 기념물의 성질에 장난스러운 장치를 더함으로써, 기념스럽지 않은 기념물이라는 웅대한 모순을 창조한다.

Wim DELVOYE
Flatbed Trailer, 2007
Collection of MONA, Australia
Photo: KATO Ken

[그랜드 갤러리의 서장] 세계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요코하마 미술관

무언가 만들어질 때, 무언가가 잊혀진다. 사용되지 않은 대량의 재료, 보여지지 않은 채로 끝나버린 실패작들, 배출된 쓰레기 더미. 그것들은 완성작이 미술관에 정갈하게 전시되든 말든, 마치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망각의 바다로 표류의 여행을 떠난다.
인류가 쌓아 왔던 예술에서의 창조의 역사,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망각이 있고, 사실은 그 망각의 무거움이야말로, 미술사의 본질이 된다. 자, 망각으로. 자, 쓰레기통으로.

Michael LANDY
Art Bin, 2010/2014
Photo: TANAKA Yuichiro

제1화 : 침묵과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요코하마 미술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정보화되지 않고 잊혀져 간다. 속삭임도 귀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침묵'과 '속삭임'에는, 궤변과 연설을 능가하는 무거움과 강함이 숨겨져 있다. 그 무거움과 강함이 예술이 된다.

제2화 : 표류하는 교실을 만나다

요코하마 미술관

일본 전후의 고도성장을 지탱해온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그러나 그 성장의 정지와 함께 내버려진 마을'가마가사키 예술대학'(통칭 가마게이)은, 고령화, 의료, 취업, 주거, 생과 사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가마가사키에, '표현'행위를 통해 관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번 여름, 표류하던 '가마게이'가 요코하마에 도착한다. 가마가사키가 보여주는 감각, 관점, 살아가는 자세가, 어떤 '여름의 교실'이 될까. 그것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Kama Gei
Installation view of "Is THAT your choice instead of my meals?", 2014
Photo: TANAKA Yuichiro

제3화 : 화씨451은 어떻게 예술에 등장했는가

요코하마 미술관

인류의 역사에 반복하여 등장하는, 강제로 무언가가 말살되어 버리는 사상통제라는 비극.
그것들을 비판하거나 규탄하는 것이, 여기에서의 목적은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혹은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러한 비극이, 다름 아닌 지금의 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은 아닐까. '너는 어때'라며 내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실마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제4화 : 홀로 세계와 격투하는 중노동

요코하마 미술관

예술가는, 이유도 없이 갑작스레 사회와 우주와의 격투를 시작한다.
홀로 맞서는 이 중노동은, 살아있는 충동의 순수한 표현이면서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은, 쓸모있음을 요구하는 가치관으로부터 이탈하여, 망각의 바다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어떤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고독한 빛을 계속 뿜어낸다.
마치 그것은, 성자가 누추한 옷을 입고 있어도, 머리 뒤에서 빛나는 희미한 후광에 의해 분명히 구별되어 보이는, 그것과 같은 종류의 빛이다.

제5화 : 비인칭의 표류(가제)

요코하마 미술관

(제5화에 대한 개인적인 각서)
테니스 코트에서 법정으로.
법정에서 감옥으로.

코트 중앙에 걸려 있는 네트를 사이에 마주보는 선수와, 그것을 지켜보는 심판. 이 등장인물이 피고와 원고와 판사로 치환되고, 머지않아 법정은 감옥으로의 길을 준비한다.

이것은 얼핏 보면 단순하게 느껴지는 변용의 프로세스이지만, 그러나 발을 들이미는 순간, 나의 뇌와 신체는 새햐앟게 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은 의자와 책상과 네트와 같이 지극히 구체적인 이미지이지만, 그것들에는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았고, 전체가 누구든지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있는 다공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거대하지만 공기와 같이 가볍게, 뭔가 이상한 중력을 느끼면서 부유하는 느낌을 맛보는 것처럼, 어떤 어지러움과 구역질, 공포, 그러면서도 확실히 어떠한 유혹이 있다.

이것은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텅 비어있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진짜 배와 전차와 비행기를 능가하는 실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관념의 프라모델.

참고로 이 가구조물의 작자명은 공란으로 되어 있다. 무기명이라기 보다는, 작자란이 비인칭으로 되어 있다.

'비가 온다'라는 것은 'I=나'도 'You=너'도 아닌, 'It=그것/It is raining'인 것처럼, 여기서 벌어지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다.

작품이란, 특정한 작자인 '나'의 제작물을 의미하지만, 혹시 이 '나'라는 것을 내 자신의 전유물이 아니라, 무수한 타자, 무수한 역사, 무수한 말, 무수한 수식과 확률의 정보 등등에 의해 형성된 우연성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특정한 이름을 가진 '나'에게 부여된 고유성은 그 근거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 거대한 관념의 프라모델을 만들어 낸 것은, 누구도 아니지만, 또 누구든 가능하다. 모두가 공범이라고 해야 할까.

Temporary Foundation
Installation view of Turn Coat / Turn Court: constitution-constellation, 2014
Photo: TANAKA Yuichiro

제6화 : 무서운 아이들의 일인극

요코하마 미술관

인간은 어른이 되는 대가로, 유년기의 기억을 버려야만 한다. 그러나 이 유년기의 기억에 깊이 사로잡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전형이 예술가이다. 예술가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이인것이다.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 우리들 인간이 태어난 원천으로 귀향하는 여행. 그것은 우리들이, 무서운 아이들의 일인극에 휘말리는, 시련으로의 유혹이기도 하다.

제7화 : 빛을 향해 소멸하다

요코하마 미술관

무엇이든 잊어버린다면, 우리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도, 보는 것도, 아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망각'이란, 손에 쥘 수 없고 영원히 도망쳐 버리는 동경의 대상과 같다.
그러나 '망각'의 실체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과거에 그곳에 있었던 '망각의' 그림자, '망각'이 사라진 후에 남아 있는 희미한 '망각의 빛줄기'라면 느끼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MISHIMA Anju + MISHIMA Ritsue
Installation view of Luminous Port
Photo: KATO Ken

제8화 : 표류를 부르는 여행

표류를 비추는 바다

타카야마 아키라의 '연극'은, 연극에 의한 연극의 박탈이다. 극장과 무대, 또는 배우와 관객의 역할 분담이라는, 연극에서는 당연히 여겨지는 요소를 하나하나 없애버리고, 새롭게 무명의 표류물로서 그것들을 긁어모은다.

타카야마가 손이 많이 가는 그러한 작업을 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연극에 기대되는, 축제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압도적인 일체감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열광한 사람들이 감동의 도가니가 되어 드라마틱한 결과에 취해 있는 동안, 타카야마는 열기에서 살짝 물러난 채, 싸늘한 열광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비평정신의 키를 쥐고, 망각의 바다를 향해 길을 떠난다.

토요다 히토시는, 리버설 필름에 의한 슬라이드쇼를 표현수단으로 정하고, 인화지라는 물질에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작업에 도전한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빛의 단편적 축적. 그것들은 우리들을 빛의 명멸이라는 형태로 이미지가 표류하는 바다로 안내하고, 깊은 침묵의 한복판으로 우리들을 던져놓는다.

제9화 : "화씨451"을 연주하다(가제)

요코하마 미술관

제10화 : 홍수의 이후(가제)

신코피어

다양한 방향에서 흘러든 다양한 표류물이, 순간적으로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고, 머지않아 다시 제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져 간다. 사람의 세상살이도 전시회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표류물의 만남과 이별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거의 같은 시기에 개최되는 '삿포로 국제예술제', '후쿠오카 아시아미술 트리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삼자가 만나서 연결된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어떤 전시인지 관객은 순간적으로 알 수 없게 될지 모르지만, 바람구멍이 열려있어야 신선한 공기도 들어오고, 시야가 더 좋아지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제11화 : 망각의 바다를 표류하다

신코피어

모든 것을 다 본 여행자(관객)가, 마지막에 보게 되는 것은, 아득한 망각의 바다.
침묵, 속삭임, 죽음(과 삶), 무, 카오스, 귀향, 빛 ・・・. 기억과 정보가 도저히 미치치 못하는 깊고 넓은 바다. 여행자는 이 망각의 바다로 표류한다. 그것은, 각각의 도착점을 찾기 위한, 각각의 여행길이기도 하다.